[special] 단편의 묘미를 즐기다

2016-10-13

김영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에릭 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소노 시온,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연출한
와이드 앵글_단편 쇼케이스 들여다보기

다디아_Dadyaa_ST1 사본

<다디아>

‘선재상’을 시상하는 공식 경쟁부문인 와이드 앵글 섹션의 아시아·한국 단편경쟁은 새로운 재능의 발굴과 소개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반면 단편 쇼케이스는 거장과 중견감독의 단편이나 옴니버스 영화 또는 주목할 만한 단편들을 모아서 소개하는 장이다. 올해 단편 쇼케이스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들이 대거 참여한 옴니버스 <우리 시대의 예술>이 있다. 싱가포르 국립박물관과 에릭 쿠 감독이 기획하고, 그와 함께 호유항, 조코 안와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브릴얀테 멘도사 감독이 함께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작품을 선정해 각 감독이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연출한 5분 남짓 길이의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예를 들면, 브릴얀테 멘도사는 필리핀의 국민화가 페르난도 아모르솔로의 <드림>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우아하고 이상화된 농촌의 풍경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멘도사 감독은 특유의 날 선 시선으로 비틀어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의 비참하고 고된 하루의 풍경으로 해석해냈다. 또한 인도네시아 근대미술의 아버지 라덴 살레에게 바치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상은 그 자체로 한편의 예술작품 못지않으며, 호유항 감독의 흑백 무성영화 역시 색다른 감각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미행_Following_ST1 사본

<미행>

 

소노 시온, 미아 와시코브스카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매들리>에 주목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교장으로 부산을 찾는 차이밍량의 <가을날>과 그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이강생이 연출한 <신념>도 차이밍량 감독의 진화하는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이다. 여담이지만, 차이밍량 감독은 영화제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보낸 환영 서한에서 ‘대본 없이 영화를 찍는 게 가능할까?’ 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다면서 학생들에게 같이 고민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의 최근 고민이 독특한 형식의 단편 <가을날>에 담겨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암전상태에서 식당에서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만이 들리는데, 한참을 지나서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오랫동안 작업(스크립터, 프로젝트 매니저 담당)을 했던 노가미 데루요와 배우 이강생이 어느 가을날 한적한 벤치에 나란히 그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강생의 <신념>은 조금 묘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는 단편으로, 차이밍량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들의 배경을 이강생이 말쑥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 그곳에서 정지된 동작을 세팅한 후 주변배경과 사람들을 촬영한 단편이다. 최소한의 상황을 던져놓고 연이어 발생하는 우연적 과정들을 담아낸 일종의 실험으로, 상영에 이어 차이밍량 감독과 이강생이 직접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는 자리도 영화제 기간 마련되어 있다.

형식적 실험이나 타 예술과의 교류를 시도한 위 단편들과 달리, 전통적인 극형식의 옴니버스 영화도 있다. <매들리>는 소노 시온, 아누락 카시압, 세바스찬 실바 감독,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미아 와시코브스카, 뮤지션 나타샤칸 등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이들이 함께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다. 제목 그대로 ‘광기’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각각의 개성과 취향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과 강렬한 스토리로 구성되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인도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아누락 카시압 감독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이웃집 청년으로 인해 파격적인 일탈을 감행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도사회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굴레를 들춰낸다.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갓 태어난 아기가 낯설고 두려운 미혼모의 광기를 통해 사회가 강조해온 모성애에 대한 불온한 문제제기를 하고, 소노 시온 감독은 도쿄 섹스클럽을 소재로 단란한 가족 구성원들이 화기애애하게 하나가 되는 기적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준다. 차이밍량에 대한 영화 <지나간 현재>로 2013년 부산을 찾았던 셔우티옹구안 감독이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도일과 마주 앉았다. <윈드-크리스토퍼 도일의 독백>은 호주에서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홍콩으로의 이주와 영화계의 입문, 왕가위와의 인연 등 촬영감독으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크리스토퍼 도일이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인생과 영화를 독백으로 들려주는 작품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영상과 그가 촬영한 영화 속 이미지가 아련한 느낌을 선사한다.

공포의 기원에 대하여_On the Origin of Fear_ST2 사본

<공포의 기원에 대하여>

 

주요 영화제에서 먼저 인정받은 아시아 단편들

올해는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해였는데, 단편도 예외가 아니다. 브릴얀테 멘도사 감독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는 레이먼드 구티에레즈의 <이마고>는 올해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진출에 이어 토론토 영화제에서 단편 대상을 수상한 화제작이고, <공포의 기원에 대하여>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고문기술자와 고문피해자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고통스런 기억과 역사를 소환하는 영화다. 올해 최고의 단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다디아>는 네팔의 시골마을을 무대로, 모두들 떠난 텅 빈 마을에 남은 노부부의 일상과 마을의 빈공간을 채우는 기억과 추억들을 기이한 상상력과 사운드로 재구성한 수작이다.
단편 쇼케이스로 구분된 <픽사 단편 특별상영>은 픽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하게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픽사 최초의 단편 <안드레와 월리 꿀벌>을 비롯해 총 16편의 단편을 엄선해 상영한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단편 쇼케이스에서는 한국영화 한편도 소개된다. 이송희일 감독과 배우 조민수가 호흡을 맞춘 <미행>은 지리산으로 숨어드는 여성과 그를 쫓는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결코 잊어선 안될 ‘그날’의 기억을 되새긴다.

매들리_Madly_ST2 사본

<매들리>


About the Author



Back to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