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칼리우드’라고 들어보셨나요?

2016-10-14

박진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 전통, 정책… 현대 콜롬비아 영화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해먹_Hammock_ST1 사본

<해머>

지난 7월 보고타영상마켓 출장 중 제작자이자 카르타헤나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디아나 부스타멘테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손수 만든 콜롬비아식 ‘집밥’을 먹으며 칸, 로테르담 등 영화제 인사들과 콜롬비아의 젊은 영화인 일부가 함께 하던 자리에 초로의 노인이 등장했다. 이내 젊은 영화인들은 소파에 앉은 노인의 주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운 좋게 함께 동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칼리그룹의 창시자 루이스 오스피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1970년대 콜롬비아 영화문화의 큰 변화를 가져온 칼리 그룹의 모임도 아마 이 소박하지만 정겹고 달뜬 대화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특별기획으로 마련된 ‘칼리 그룹: 현대 콜롬비아 영화의 뿌리’는 최근 급부상한 콜롬비아 영화의 현주소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칼리 그룹의 유산에서 그 여정을 시작한다. 전통적으로 남미의 영화산업이 그랬듯이, 콜롬비아 영화 역시 TV에 비해 산업적 규모도 작았고 문화적 영향력 역시 미비했다. 여기에 소재와 제작 환경에 대한 국가의 검열과 통제, 최근 국민투표에까지 부쳐져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던 정부와 무장혁명조직(FARC) 사이의 무력갈등과 그로 인한 폭력의 경험 등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콜롬비아 영화는 몇몇 영화를 통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칼리 그룹, 영화의 시대를 열다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바꿔놓은 것이 바로 칼리 그룹의 등장이었다. 당시 단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면서 미학적 실험과 사회비판적 시선을 다듬고있던 카를로스 마욜로(1945-2007)가 영화 전공으로 미국 유학 중 돌아온 루이스 오스피나와 재회하면서(둘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두 사람의 영화적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이 함께 연출한 <보고 들으시오!>(1972) 그리고 두 사람의 불세출 ‘문제작’(!)이 된 <빈곤의 뱀파이어>(1978)는 당대 콜롬비아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전통과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3세계의 비참한 현실을 1세계 관객들에게 전시하는데 몰두했던 영화들을 ‘빈곤의 포르노(Porno-miseria)’라 부르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음악 만세_Liveforever_ST2 사본

<음악 만세>

그러나 칼리 그룹의 진정한 유산은 영화제작에만 그치지 않았다. 마욜로와 오스피나는 당시 칼리에서 소설가와 극작가, 비평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젊은 천재 안드레스 카이세도(1951-1977)와 함께 ‘칼리 시네마 클럽’이라는 시네마테크를 열어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다양한 예술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영화전문지인 <아이 온 시네마>를 창간해 본격적인 영화담론을 이끌어갔다. 이들의 활동은 당시 문화적 에너지가 넘쳐나고 자유로운 사고가 팽배했던 도시 칼리를 이른바 ‘칼리우드(Caliwood)’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영화의 메카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음악 만세>(2015년 카를로스 모레노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완성되었다)라는 불세출의 작품을 남기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세기 콜롬비아 문학의 이단아 카이세도의 영향력은 칼리 그룹의 시네필적 열정에 강한 반항의정신을 더했다.

순수한 피_Pure Blood_ST2 사본

<순수한 피>

마욜로-오스피나 콤비는 1980년대 세 편의 장편영화를 함께 제작했다. 시작은 1982년 루이스 오스피나의 장편 데뷔작 <순수한 피>(1982)였다. 생명연장을 위해 젊은 백인남성의 피를 수혈하는 부호와 그를 위해 밤마다 젊은 남성을 사냥하는 뱀파이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이 영화에서 카를로스 마욜로는 주연을 맡았다. 공개 당시 저급한 영화로 폄하 받았던 <순수한 피>는 정통 장르영화 미학의 꼼꼼한 참조로 보고타 밤거리 특유의 분위기와 자본가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녹여낸 문제작으로 손꼽힌다. 이후 두 사람은 카를로스 마욜로가 연출한 두 편의 장편영화 <네 육신의 살점>(1983)과 <아라우카이마 맨션>(1986)에서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을 이어나갔다. (오스피나는 두 작품 모두 편집을 맡았다) 특히 두 작품은 산간 지역과 밀림 지대 등 콜롬비아 특유의 지형적 매력을 담아낸 화면에 근친상간, 카니발리즘 등 도발적인 소재들을 담아내면서 기존 장르영화의 요소들을 독특한 스타일로 재구성해냈는데 이런 두 사람의 스타일은 이후 ‘트로피컬 고딕’이라는 이름으로불리며 관심을 끌었다.

네 육신의 살점_Flesh of Your Flesh_ST3 사본

<네 육신의 살점>

그러나 마욜로-오스피나 듀오의 작품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독립제작방식으로 단편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온 오스피나와는 달리, 마욜로는 이후 TV로 무대를 옮겨 <설탕!>(1990)같은 불세출의 TV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2007년 사망하기 전까지 영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으며 콜롬비아 영화의 부흥을 알린 젊은 영화작가들에게 칼리 그룹의 영향은 막대하다. 70년대 단편 다큐에서 보여주었던 시네-리얼리즘의 고민, 80년대 장르영화를 경유하여 관찰했던 ‘풍경-인간-폭력’이라는 삼각형은 이후 현대 콜롬비아 영화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젊은 작가들이 몰두라고 있는 화두다. 뿐만 아니라, 오스피나는 <크랩트랩>(2009)의 오스카 루이즈 나비아, <라 시르가>(2012)의 윌리엄 베가 등 젊은 감독들의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전통’으로서의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한편 마욜로-오스피나 듀오의 궤적은 1980년대 콜롬비아 영화가 겪었던 전반적인 변화, 특히 콜롬비아 영화진흥공사인 포시네(FOCINE)의 부침과 무관하지 않다. 1978년 정부에 의해 창설된 포시네는 1980년에 들어 직접 제 작방식이라는 영화진흥정책을 추진했다. 시나리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에 직접제작을 맡았던 이 정책의 수혜를 본격적으로 받았던 작품이 바로 <아라우카이마 맨션>이었던 것이다. 세르지오 카브레라의 <달팽이의 전략>(1990)과 콜롬비아 영화로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빅토르 가비리아의 <움베르토 D>(1990) 등 콜롬비아 영화의 부활을 알린 다양한 걸작들은 지원, 제작했던 포시네는 집행부의 부패 등 일련의 악재를 겪으며 1993년 폐쇄되었다.

크랩 트랩_Crab Trap_ST3 사본

<크랩트랩>

영화진흥정책과 현대 콜롬비아 영화
주춤했던 콜롬비아 영화의 부흥에 신호탄을 가져온 것은 2003년 제정된 이른바 종합문화법과 영화법이었다. 포시네 이후 자국영화 진흥을 위한 복합 펀드 운영조직으로 1997년 등장한 프로이마헤네스(PROIMAGENES)는 2003년 영화법 제정을 바탕으로 제작 뿐 아니라 상영, 배급 등 국내영화시장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나갔다. 이후 지금까지 프로이마헤네스는 해외공동제작 활성화, 제작펀드의 효율적인 운영, 자국영화의 해외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이는 작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세자르 아세베도의 <대지와 그늘>, 그리고 2016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치로 게라의 <뱀의 포옹> 등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고있다. 올해 특별기획 역시 프로이마헤네스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업 진흥과 영화적 전통 수립,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신진 작가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는 영화진흥정책의 핵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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