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특별대담 ‘평론가 X 평론가: 스즈키 세이준의 유산’을 통해 본 스즈키 세이준

2017-10-18

글 김소미·사진 박상근

피쳐_특별대담_박상근 복사

달시 파켓, 토니 레인즈(왼쪽부터).

아시아영화 전문인 영화 평론가 토니 레인즈와 달시 파켓이 ‘스즈키 세이준’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다. 토니 레인즈는 실제로 만나 본 스즈키 세이준의 인상을 말해달라는 달시 파켓의 질문에 ‘아이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토니 레인즈는 이와 관련해 스즈키 세이준의 동생이자 작가인 스즈키 겐지가 수필집에서 “형과 나의 공통점은 20대 초반 이후로 더 이상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라고 술회한 부분을 언급했다. 경계를 벗어난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영화 세계를 자랑했던 스즈키 세이준을 보다 면밀히 살피기 위해 17일 오후 2시40분,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스즈키 세이준: 경계를 넘나든 방랑자’ 두 번째 특별대담의 내용을 따라가 보았다.

달시 파켓_ 지난번 특별대담에선 <동경 방랑자>(1966)를, 오늘은 <육체의 문>(1964)을 대표작으로 상영했다. 이 작품들이 스즈키 세이준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토니 레인즈_ <육체의 문>은 60년대 초반 스즈키 세이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회사가 쥐어주는 대본을 버리고 스스로 문학 작품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거다. <동경 방랑자>의 경우 판타지적 요소와 함께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려는 관심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작용이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가 강렬한 이유다.

달시 파켓_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선 모든 감독들에게 비슷한 조건이 주어진다. 그 속에서 스즈키 세이준이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토니 레인즈_ 스즈키 세이준은 넘쳐나는 감독들 속에서 돋보이고자 하는 야망이 아주 강했다. 시각적으로 대담한 시도를 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0여년 전 런던에서 <오페레타 너구리저택>(2005)과 관련해 그와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그때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이전보다 훨씬 더 솔직한 답변이 돌아오더라. 비슷한 시기에 닛카츠에서 활동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B급 영화를 단 4편 제작하고는 바로 대형 상업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질투심이 강한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마무라보다 나은 것 같은데, 나는 더 잘할 수 있어!’ 그런 생각으로 투지를 불태웠던 거다. (웃음)

달시 파켓_ 한편 <살인의 낙인>(1967)은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당신도 이 작품이 스즈키 세이준의 최고작이라 생각하나?

토니 레인즈_ <살인의 낙인>은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이번 특별전에 꼭 넣기를 바랐던 영화다. 난 <살인의 낙인>이 스즈키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고 부조리하고 얼토당토않은, 스즈키 세이준 특유의 미학이 극대화된 아주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달시 파켓_ 난감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해본다. 개인적으로 스즈키 세이준의 최고작을 꼽자면?

토니 레인즈_ 사실 내겐 전혀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웃음) <겡카 엘레지>(1966)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자라온 당대 일본의 파시즘적 성향을 그린 작품인데, 시대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이뤄지는 동시에 아주 코믹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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