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광국 감독 – 도망치지 말고 대면하기

2017-10-19

글 이주현·사진 손홍주

인터뷰 이광국 감독-손홍주 복사

이광국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이다. 첫영화 <로맨스 조>(2011)부터 <꿈보다 해몽>(2014), 그리고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 부문에 초청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까지 세편의 영화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은 경유(이진욱)가 대리운전 일을 하며 겨울의 거리를 떠돌다 소설가로 등단한 과거의 여자친구 유정(고현정)을 만나는 이야기다. 전작들보다 현실에 발을 단단히 붙인 작품이지만, 비현실적 현실 묘사는 여전히 반복된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이광국 감독에게 물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는 구절은 어떻게 떠올렸나.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여름철 손님 접대의 어려움을 뜻하는 표현인데, 지난해 여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그 표현을 쓰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영화의 제목이 될 수 있겠다 싶었고, 결과적으로 그 구절이 영화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여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 겨울에는 촬영을 할 수 있을테니,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때부터 제목에 맞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에 호랑이가 들어가니 ‘호랑이가 어느날 동물원에서 탈출한다’라는 설정이 떠올랐고, 호랑이가 동물원을 탈출하던 날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버림받는다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호랑이, 그리고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손님일 수밖에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호랑이는, 비겁한 우리들의 모습을 얘기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징같은 거다.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혹은 스스로를 마주할 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모른척하거나 도망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대면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다시 말해 호랑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의 실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한때는 소설가 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대리기사 일을 하는 경유가 주인공이다. 대리기사로 겪어야 하는 수모나 등단하지 못한 남자의 꺾인 꿈처럼 경유의 직업적 특징에서 파생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영화감독이 주인공인 <로맨스 조>, 연극배우가 주인공인 <꿈보다 해몽>도 그러했듯, 언제나 인물의 직업 설정이 중요해 보인다.

=내가 가진 고민 중에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찾는 편이다.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자연히 무언가 창작하는 직업군의 인물들이 많은 거고. 나 역시 경유처럼 사회의 어느 분야에 가면 여전히 초보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놓이고, 창작의 성과를 내지 못해서 힘든 경험을 한다.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그리고 경유가 나그네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떠돌아다니고,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마주하고, 거기서 일이 발생하는 상황을 생각했을 때, 대리기사 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대리기사 일이 뭔가 쓸쓸함이 배어있는 직업 같았다.

-현실과 비현실을 유연하게 오가는 이야기 전개가 감독님 영화의 특징인데, 이번엔 꿈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꿈속에서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어’라는 대사로만 꿈을 처리한다. 현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구조 자체는 전보다 단순해졌다.

=전작들은 처음부터 구조적인 접근을 고려해서 만들었다. 이번엔 말씀드렸다시피, 제목이 떠오르고 거기서 파생된 아이디어가 이어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감정을 쫓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구조를 단순화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대신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영화의 바닥에는 깔려 있다.

-이진욱과 고현정 두 배우의 활약도 인상적인데 어떻게 캐스팅 했나.

=경유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시나리오를 먼저 보여드린 건 고현정 선배님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여서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마자 보여드렸는데 정말 선뜻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 촬영 시점까지 제작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하고 재밌게 찍으면 되죠’ 라면서 든든한 버팀목처럼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그 다음엔 선배님과 잘 어울리는 짝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좋은 조합을 고민하다가 진욱씨 사진을 선배님 사진과 맞춰보니 잘 어울리더라. 진욱씨도 마침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기쁘게 동참해주었다.

-저예산이 아닌 규모 있는 영화 연출에 대한 욕심은 없나.

=안정적인 예산은 언제나 바란다. (웃음) 하지만 거기에 목 맬 수만은 없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뭔가 만들어내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넉넉하지 않으면 더 치열하게 생각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 절실하니까. 다음 작품도 올 겨울에 시나리오를 써서 내년에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


About the Author



Back to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