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엿보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2006-10-13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Driving with My Wife’s Lover

감독 김태식/한국/2006년/92분/새로운 물결

한 왜소한 사내(박광정)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낙관을 새기고 있다. 마침내 완성된 도장이 찍어낸 붉은 두 글자는 ‘씨팔’. 강원도 양양군 낙산읍의 도장포 주인 김태한은 지금 아내의 불륜 상대를 찾아 분연히 떨치고 나설 참이다. 그가 적발한 아내의 애인은 서울의 개인택시 기사 박중식(정보석).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한 김태한의 눈에는 마침 야쿠르트 아줌마와 추근대고 있는 허우대 멀쩡한 ‘놈’의 모습이 들어온다. 집만 나서면 사거리 하나 건너기도 전에 ‘애인’ 한 명과 마주치는 가공할 바람둥이, 그것이 박중식이다. 태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중식에게 낙산행 장거리 주행을 주문한다. 남편이 출장중이라고 믿는 아내 곁에 중식을 데려다놓고 현장을 덮칠 심산이다. 그러나 영화는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 심리적으로 고립된 태한의 눈에 비치는 역설적 이미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찌는 여름날 두 남자의 낙산 행은 갖가지 사고를 거치며 슬슬 몽롱한 소풍이 되어간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긴 ‘엿보기’다. 여행 내내 자유연애론을 설파하고 여자와 수작을 거는 중식을, 태한은 약한 수컷이 강한 수컷을 곁눈질하는 느낌으로 훔쳐본다. 나중에는 진짜 몰래카메라도 등장한다. 오줌줄기를 비교하고 다방 ‘티켓’을 같이 끊고 “내 아내에게도 저랬겠지!” 치를 떤다. 광각렌즈를 통해 인물의 행위를 어딘가 가소롭고 우스꽝스럽게 포착하는 이 영화의 구도는 아파트 문 방범렌즈의 시야를 언뜻 연상시킨다. 영문 모르는 사냥감에게 올가미를 거는 입장인데도 태한의 행위는 좌절의 연속. 속내를 퍼부었나 싶으면 듣는 이가 없고 한 방 먹였나 싶으면 별 것 아니다. 조롱과 연민, 이야기적 트릭과 진실을 접붙이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절정은 태한이 ‘아내의 애인의 아내’를 만날 때 찾아온다. 동병상련의 두 남녀는 서로를 위로할 방법을 기적적으로 찾아낸다. 사내답지 못해 보였던 도장 파는 기술이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하는 대목이 오묘하다. 중식의 아내로 분한 조은지의 연기에 주목할 것. 거침없고 철없는 여자 역은 언제나 이 배우의 장기였으나 이번엔 거침없으되 원숙하기까지 한 여인이 그녀를 통해 웃고 울고 노래한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비 관습적인 영화지만, 여분의 시간이나 공간 없이 효율적으로 연출됐다. <가족시네마> 조감독을 경험하고 입봉한 김태식 감독은 화면 구도와 편집의 표현력을 극대화하고자 애썼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모파상의 단편처럼 쓸쓸하면서도 팽팽한 희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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