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가족의 곤경, 형식의 파괴

2016-10-07

글 남동철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한국영화 상영작 17편의 어떤 경향
- 김종관 감독의 신작부터 마동석의 차기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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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는 한국영화들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작품들은 가족의 초상을 그린 영화들이다. 뉴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2편, <환절기>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환절기>는 아들이 사고로 의식 불명에 처한 다음 아들의 친구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배종옥이 어머니로, 이원근이 아들의 친구로 나오는데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여는 둘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단편영화를 찍는 이야기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가 감독과 스태프가 되어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닮은 영화를 찍게 된다. 기주봉이 채플린처럼 옷을 입고 연기를 할 때 이 영화가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자 배우 기주봉에 대한 헌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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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투게더>

신동일 감독의 <컴, 투게더>는 한국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의 곤경을 그린 작품이다.아버지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보험 영업을 하는 어머니는 실적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며, 딸은 대학 입시에 실패할까 노심초사한다. 무한경쟁의 압박감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무능력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때로 거짓말을 하고 때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도 한다. <컴, 투게더>의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신동일 감독은 그래도 이 잔인한 세상에 맞서 이들 가족이 굳건히 손을 맞잡기를 기원한다. 단편 <여름방학>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서 수상했던 손태겸 감독은 데뷔작 <아기와 나>를 완성했다. 속도위반으로 낳은 갓난아기가 있는 청년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아기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는 행방불명 되고 약속된 일자리는 사라진다. 청년은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아기와 나>는 아기로 인해 성장하는 젊은이의 초상을 그린다. 대조적으로 <용순>은 여고생의 성장을 담고 있는 영화다. 외국인 새엄마를 맞은 아버지와 불화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 여고생은 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면서 큰 소동을 일으킨다. 색다른 성장영화로 기억될 작품이다. <가시꽃>의 배우로 낯익은 남연우 감독의 데뷔작 <분장>은 형제가 주인공인 영화다. 가난한 연극배우인 형은 동성애를 다룬 연극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인기를 얻지만 남동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자기 마음 속에 만들어놓은 늪에 빠져 비극을 맞는 형을 남연우 감독이 직접 연기한다. 샤이니의 민호와 마동석이 주인공을 맡은 <두 남자>는 가출 청소년과 악덕 노래방 업주의 처절한 싸움을 그린다. 아이들은 어른을 속이려 들고 어른들은 아이를 착취하려 드는 정글 같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로 마동석은 딸을 끔찍이 아끼면서도 딸 또래의 소녀를 노래방 영업에 이용하는 이율배반적인 어른으로 등장한다. <십분간 휴식>이라는 단편영화로 주목 받았던 이성태 감독의 데뷔작이다.

 

형식을 벗어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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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

올해 선정작 가운데는 형식적 파격이 두드러진 영화들도 많다. 박기용 감독의 <지옥도>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를 롱테이크로 찍은 영화다. 무더운 여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걸어가는 여학생의 뒤를 시종 쫓아가던 카메라는 그녀가 겪는 몇 가지 불운을 실시간 같이 경험하게 만든다. 중간에 ‘지옥도’라는 제목이 떠오를 때 긴 시간 롱테이크가 왜 필요했는지 공감할 수 있다. <춘천, 춘천>은 춘천 여행을 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와 어느 중년 남녀의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다. 두 이야기 사이에 연결고리는 없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며 영화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철원기행>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은 김대환 감독이 제작을 맡고 <새출발>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장우진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다.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은 같은 공간에서 찍은 네 가지 단편이 이어지는 영화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등 4명의 여배우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로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영화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표정과 말을 통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야말로 디테일로 승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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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인>

<꿈의 제인>은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모호한 영화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로 낯익은 이민지와 독립영화계에서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구교환이 나오는 영화로 구교환의 트랜스젠더 연기가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가출한 소년, 소녀들이 함께 살면서 형성하는 가족인 가출팸의 이야기로 트랜스젠더 제인이 이끄는 가출팸은 주인공 소녀를 보호하고 아껴주지만 현실은 소녀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누에치던 방> 역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영화다. <누에치던 방>은 어느 날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집에 찾아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기이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다. 30대 초반인 이 여자는 자신보다 10살쯤 많은 여자를 고등학교 친구로 여기는데 처음 본 이 여자에게 나이 많은 여자는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과거에서 누군가가 찾아온 듯 둘은 가까워지고 두 여자의 애인들도 서로 관계를 갖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파스카>의 안선경 감독이 내놓은 신작 <나의 연기 워크샵>도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연극 무대를 위해 연기 수업을 받는 네 배우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사이에 위치한 영화처럼 보인다. 네 배우가 각자 자신의 과거와 현재 심정을 털어놓는 순간,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스카>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영화다.

 

신선한 시도로 적은 예산을 극복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등장인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두번째 겨울> <소음들> <유타가는 길> <커피메이트>등이 그런 예이다. <두번째 겨울>은 전세 기간이 끝나가서 새로운 전세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가난한 부부가 주인공인데 시종 부부의 표정이 중심에 놓인 작품이다. <소음들>은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가 갑자기 집에 찾아온 낯선 여자와 얽히면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이야기. 남자와 여자의 어이 없는 대화와 행동이 중심인 특이한 코미디다. <유타가는 길>은 동반자살을 위해 유타주솔트레이크로 향하는 남녀가 사막을 지나는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이야기. <허스 HERs> <오이시맨> 등을 연출한 김정중 감독의 영화로 이진욱, 류혜영이 주연을 했다. <멜로>라는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적 있는 이현하 감독의 신작 <커피메이트>는 윤진서, 오지호 두 배우가 주인공이고 둘의 대화가 중심인 영화다. 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 교감이 평온한 일상에 파열을 일으키는 이야기.
이상 17편의 한국영화는 주류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다. 부산에서 극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즐거움에 빠져보시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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