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오손 웰즈의 미완성 공개작이 여기에

2018-10-10

복원작, 미공개작과 만나는 부산 클래식

<바람의 저편>

<바람의 저편>

영화의 본질적인 고향, 고전 영화가 던지는 아름다움은 아마도 플래시 포워드의 활기찬 도약보다는 플래시백이 주는 완벽함에 대한 갈망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부산 클래식’ 부문은 영화사가 기록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엄선해서 소개한다. 상영 목록에서 단연 돋보이는 영화는 넷플릭스가 참여해 무려 40년 만에 완성된 오손 웰즈의 감독의 유작 <바람의 저편>(2018)이다. 1970년부터 6년간 촬영되었지만 재정난으로 줄곧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가, 1985년에 오손 웰즈 사망 이후 복잡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드디어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유럽으로 건너갔던 영화감독 제이크 한나 포드는 할리우드로 복귀하면서 내놓을 새 영화의 마무리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작업 도중 7월 2일 되어 자신의 70세의 생일을 맞아, 그는 할리우드 상류 사회의 인사들을 농장으로 초대한다.<바람의 저편>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병행해서 진행되는 영화다. 두 이야기는 일부 서로 겹치는데, 먼저 첫 번째 이야기는 위에 나열한 것처럼 한나 포드의 마지막 몇 시간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과거 할리우드의 촬영 현장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어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연출한 영화 속의 영화로, 이 두 번째 부분에서 앞서 첫 번째 서사의 등장인물이 대거 출연한다. 영사실에서 영화를 보던 손님들이 한나포드의 영화에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 드러나지않는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진실 등 오손 웰즈는 여전히 혁신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마무리하고 있다.

올해 세상을 떠난 거장들의 초기작도 몇 편 눈에 띈다. 먼저 스리랑카영화를 세계에 처음 알렸던 레스터 제임스 페리에스 감독의 데뷔작 <레카바>(1956)이다. 이 영화는 아시아의 대표 고전이라 불려도 좋을 정도로 우아하고 정적이다. 미신이 지배하는 스리랑카 시골 마을 시리얄라, 치유력을 가졌다고 점지 되었던 소년 세나가 시력을 잃은 아눌라의 눈을 치료하는데, 이를 계기로 엄청난 곤란함에 빠진다. 세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이용해 돈 벌 궁리를 하고, 아픈 자식을 살리려는 마을 지주가 이기적으로 아이를 억압한다. 아시아 최초로 400피트 매거진의 아리플렉스를 사용해 촬영한 영화로, 스리랑카의 목가적인 풍경과 최소화된 대사의 융합이 시네마의 질적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체코 뉴웨이브의 아이콘이라 말할 수 있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첫 극영화 <블랙피터>(1964)도 아시아 프리미어로 소개된다. 수줍은 십 대 남학생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난처함이 생생하게 작품에 묘사돼 있다. 포먼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도 유독 가볍고 쉬운 편에 속하는 이 초기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그건 단연 ‘댄스홀 시퀀스’일 것이다. 퇴보하던 당대 사회주의 블록에 대한 염려, 68혁명 직전의 동유럽에 대한 감독의 마음속 애정이 젊은이들의 어설프지만 풋풋한 감성을 통해 전달된다.

타비아니 형제를 세계무대에 알린 작품
18세가 될 때까지 문맹이었던 양치기 소년이 군대에 다녀온 뒤로 언어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가비노 레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완성된 <파드레 파드로네>(1977)가 197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타비아니 형제는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알렸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섬마을 사르디니아를 자갈투성이의 건조한 공간으로 그리며, 적막하고도 강압적인 장소로 묘사한다. 풍경뿐 아니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몇몇 지점의 뉘앙스도 강렬하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사실적 이미지들이 엇박자의 편집 리듬과 만나 순간적으로 관객을 사색에 빠트린다. 마치 “누가 할 수 있고, 누가 해야 하나?” 질문하는 듯 느껴진다. 올해 세상을 떠난 형 비토리오 타비아니의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함께, 관객에게 긴 영감을 선사하는 걸작이다.

파드레 파드로네

<파드레 파드로네>

잉마르 베리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딱 한 편의 영화를 선정해야 한다면, 그건 이 작품 <제7의 봉인>(1957)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죽음’과 체스 경기를 하게 된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게임의 과정에서 희미해진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이른바 신성한 것과 사소한 것의 교차를 통해 ‘불가능이 없는 시작’의 숭고한 체험을 겪은 것이다.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최고의 마스터피스 <제7의 봉인>은 충만함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영화사의 진정한 정신적 뿌리라 할 수 있다.

 <제7의 봉인>

<제7의 봉인>

한편, ‘사이트 앤 사운드’지가 선정한 세계 360대 클래식 무비로 꼽힌 처드 송스리 감독의 <상처>(1977)는 태국필름아카이브에서 복원한 디지털 버전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이국적인 감상을 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태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청년 콴과 리암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의 ‘상처’는 리암의 가족들에게 폭행당한 콴의 머리에 생긴 것으로, 주인공은 이를 ‘리암에 대한 사랑의 표식’이라고 설명한다. 잦은 롱테이크와 트래킹쇼트의 사용, 인물을 향한 줌 활용법이 돋보이는 영화로, 기품 넘치는 보석 같은 아시아의 고전이다.

<상처>

<상처>

<패왕별희>

<패왕별희>

중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두 경극 배우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패왕별희>(1992)가 DCP 버전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중국 5세대 감독의 리더 격인 천 카이거 감독의 이 유명한 명작은 다시 보아도 스펙터클하고 아름답다. 장국영이연기한 두지의 조심스럽고도 우아한 에너지, 쥬산 역의 공리가 보여주는 숭고하고도 강인한 품격이 자칫 아카데믹하게 흐를뻔한 플롯의 전형성을 뒤엎는다. 군벌 시대를 거쳐 문화대혁명 이후까지, 변화하는 이데올로기의 무질서한 움직임 속에서 개인이 겪는 인생 여정이 관객들의 폐부를 찌른다. 이밖에 부산 클래식 섹션에서는 <세 얼간이>(2009)로 유명한 라지쿠마르 히라니의 놀랄만한 데뷔작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2003)를 비롯해, 1997년 세상을 떠난 중국 무협영화의 거장 호금전의 <영춘각의 풍파>(1973), 고려인 영화의 대표 격으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송 라브렌티의 다큐멘터리 <고려 사람>(1992)과 <바둘의 땅>(1990), 그리고 최국인의 대표작이자 아시모프 감독과 공동 연출한 <용의 해>(1981) 등 총 12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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