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미지 북> 파브리스 아라뇨 프로듀서 ··· 고다르의 살아 있는 카메라

2018-10-10

파브리스 아라뇨는 장 뤽 고다르의 <이미지 북> 프로듀서로써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스위스 감독이자 프로듀서, 촬영감독이기도 한 파브리스 아라뇨는 2002년부터 고다르와 협업을 시작했다. <필름 소셜리즘>(2010), <언어와의 작별>(2013), <이미지 북>(2018)으로 이어지는 고다르의 영화적 모험, 영화 영토의 확장은 파브리스의 충실한 보조 덕분이다. 고다르의 손과 발, 아니 살아 있는 카메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파브리스에게 이미지의 본질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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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부터 20여 년을 고다르 감독과 함께 작업 중이다.
= 2002년에 촬영현장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워 뮤직>(2004)에 참여했다. 나 역시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걸 좋아해서 흔쾌히 합류했다. 고다르와의 작업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느낀다. <필름 소셜리즘>, <언어와의 작별>, <이미지 북>세 편을 함께 하면서 점차 역할이 늘어서 촬영, 색 보정, 믹싱, 사운드는 물론 <이미지 북>에서는 프로듀서까지 맡았다. 조그만 집에 친구들끼리 모여 수작업으로 뭔가를 만드는 감각으로 제작 중이다. ‘수제 영화’라고 할까. 실은 프로듀서 라기보다는 텃밭에서 감자를 일구는 농부에 가깝다. (웃음) 게다가 고다르는 아직 20년 전 비디오 데크로 편집을 하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다시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거친다. 철저한 가내 수공업이다.

- <언어와의 작별>을 위해 3D카메라를 직접 제작했다.
= <언어와의 작별>은 그저 고다르가 3D를 찍어보고 싶다는 한 마디로 시작했다. 기존 3D카메라는 괴물 같은 사이즈와 달리 흥미롭지 않은 이미지를 찍어낸다. 이미지에 깊이를 줄 때 꼭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회화만 해도 평면에서 충분히 깊이를 자아내지 않나.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감독처럼 영화의 역사에는 이미 엄청난 깊이감을 창조한 이들이 존재한다. 어차피 3D를 할 거라면 깊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3D라는 기술로만 시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 <언어와의 작별>에서는 3D 이미지가 각각 관객의 눈에서 이중으로 노출되는 독특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 일단 전문적인 카메라를 사긴 했는데 거대한 사이즈에 들고 다니기만 불편해서 가벼운 사진용 카메라 두 대를 나란히 붙여 간단한 조작 장치를 만들어봤다. 한 카메라가 하나의 눈알이라 생각하고 단순하게 적용한 거다. 그런데 의외의 효과들이 발생했다. 눈이 서로 다른 피사체를 보는 과정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잔상들이 발생한 거다. 고다르는 거기에 또 영감을 받아 작업을 이어갔다.

- 당신의 작업은 현장에서 시나리오대로 촬영하는 걸 넘어 스스로 고다르의 손과 발, 그리고 카메라 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 고다르에겐 시나리오 같은 건 없으니까. (웃음) 비유하자면 나는 생각하고, 대화가 통하는, 살아있는 카메라다. 프로세스는 단순하다. 그가 상상하면 함께 회의하고 내가 찍는다. 다만 고다르의 비전은 시나리오나 콘티 같은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미지 북>의 경우 고다르가 차기작은 집 지하실에서 부드러운 손으로 감싸 안는 구성으로 갈 것이라며 다섯 손가락의 이름들을 말해줬다. 그게 <이미지 북>의 다섯 챕터다. 이후에 거대한 책장을 제작해서 거기에 챕터별로 자료들을 구해서 채웠다. 그 책장이 최초의 이미지 북인 셈이다.

- 당신을 만난 뒤 고다르는 영상, 기억, 아카이브의 콜라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필름 소셜리즘>이 출발이었다면 <언어와의 작별>에서는 3D를 더했고 <이미지 북>에서는 사운드(고다르의 목소리로 녹음된 내레이션)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 가끔 고다르가 “지금 할 수 있는 기술로 해보자”라며 말릴 때도 있다.(웃음) 하지만 결국엔 허락하고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와의 작업은 항상 행복하다.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완전한 표현의 자유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VR행사들을 보고 다음에는 저 기술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물론 VR을 활용한다고 해도 가상현실을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그걸 뒤집고 해체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내러티브 영화는 이야기라는 가상의 현실을 만들고 그 환상 속에 관객을 수장시킨다. 3D나 VR 같은 기술은 그 만들어진 현실 속으로 더 깊숙이 잠기도록 수면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건 우리의 관심분야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실재를 상상할 수 있도록 창을 열어주는 이미지다. 이미 지란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리를 마련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허우샤오시엔 같은. 그런 이미지와 이미지의 사이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면에서 생성되는 실재를 상상할 수 있다.

글 송경원·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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