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첫 선 보인 커뮤니티 BIFF ···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 풍성하게 열려

2018-10-10

외압을 헤치고 밝은 미래로

이명세감독이 커뮤니티 BIFF 세레모니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명세감독이 커뮤니티 BIFF 세레모니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박종덕)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 노래를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는 이병주 재즈 퀸텟 뒤로는 이명세 감독의 1999년작<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40계단신이 스크린에 뜬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부산 중앙동 40계단에서 정장 차림의 한 남자(송영창)가 또 다른 남자(안성기)의 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명장면이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빗소리와 <홀리데이>가 이미지를 가득 채운다. 4분 남짓한 재즈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커뮤니티 BIFF가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 순간이다.

커뮤니티 BIFF 세레머니가 지난 10월5일 오후6시반 부산 중앙동에 위치한 갤러리 스페이스 닻에서 열렸다. 원래는 영화를 찍은 공간인 40계단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태풍 콩레이가 북상하면서 근처에 있는 실내로 장소를 바꾼 것이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윤종서 부산시 중구청장, 이명세 감독, 배우 안성기를 포함한 100여 명의 사람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워 행사 시작도 전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23년 전 생명력을 처음 얻은 원도심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미래의 청사진으로 커뮤니티 BIFF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무척 상징적인 풍경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시간 코멘터리를 하고 있는 이명세 감독(오른쪽).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시간 코멘터리를 하고 있는 이명세 감독(오른쪽).사진 박종덕

안성기는 “부산영화제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남포동의 열기는 대단했다. 나이 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커뮤니티 BIFF가 그 열기를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년 전 자신의 영화를 찍은 곳에서 행사를 한 이명세 감독은 “영화제가 처음 만들어지기 전에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만나 ‘부산에서 영화를 촬영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지독한 사랑>(1996)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연달아 부산에서 찍었다”라며 “태풍만 아니었다면 40계단에서 <홀리데이>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원도심에서 시도된 영화제의 미래
올해 프리 페스티벌로 출발한 커뮤니티 BIFF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열흘 가까이 진행되는 영화제 기간 동안 프로그래머가 선정한 영화를 감상하는 보통 영화제와 달리 커뮤니티 BIFF는 1년 내내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골라 상영을 요청하고,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 소통하는 관람 문화를 지향한다. 중앙동에 있는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진행된 커뮤니티 BIFF는 상영 프로그램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나뉘었다. 상영 프로그램은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이름대로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영화를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시어터, 영화학도와 영화광을 위한 시네필 라운드, 시민사회 커뮤니티와 함께 프로그래밍을 직접 하는 커뮤니티 시네마다. 액티비티 시어터는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이 함께 영화를 즐기는 ‘비프랑 키즈랑’, 관객이 <맘마미아!2>( 2018)에 나오는 아바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도록 선창하는 가수와 노래방 자막이 ‘한글 음차’로 제공되는 ‘쇼타임’, 종잡을 수 없는 취향들의 영화를 틀어놓고 밤새도록 음주가무에 힘쓰는 ‘취생몽사’로 꾸려졌다. 취생몽사는 88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KBS 다큐멘터리 <88/18>, 정가영 감독의 <밤치기>(2017), ‘29금’ 애니메이션 <나쁜상사>( 2018),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등 네 편을 연달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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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 거리에서 진행된 시네객잔 공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네필 라운드는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던 대학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대학독립만세’, 이명세, 변영주, 윤종빈 감독이 각자의 전작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낮은 목소리2>(1996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를 실시간으로 음성 해설하는 마스터톡이 진행됐다. 영화제에서 감독이 라이브로 코멘터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커뮤니티시네마는 각종 커뮤니티가 영화 함께 보기 행사를 기획해 영화제에서 새로운 상영 문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국의 다양한 공동체와 소모임을 발굴하고 지원해 시민사회의 문화진흥에 이바지 하겠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책이 반영된 커뮤니티 BIFF의 핵심 섹션이다.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루 동안 영화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인 ‘시네마 스포츠’(식대를 포함한 참가지 3만원), 전국 영화 활동가 포럼인 ‘어크로스 더 시네마’, 시민과 영화인, 활동가들이 어울리는 광장 포차 ‘시네객잔’, 선후배 영화인이 네트워킹하는 EDM 파티 ‘옥상 날다’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행사에 참여한 관객과 영화인 모두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뜨겁다. 정미 커뮤니티 BIFF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비프랑 키즈랑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안무가의 율동에 맞춰 ‘쭉쭉’ 체조를 하고 신나게 춤을 추며 영화를 즐겼다. 쇼타임에서 <맘마미아!2>를 관람한 관객들은 분위기가 생소했는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않은 까닭에 “다음에는 상영 전 입을 푸는 연습 시간을 따로 가지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나. 마스터톡에서 전작 <범죄와의 전쟁>을 코멘터리한 윤종빈 감독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두 시간 넘게 음성 해설을 하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라며 “그런데도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워주셨고, 코멘터리가 끝난 뒤에도 많은 질문들을 해주신 게 인상적이었다”라고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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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관객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는 시네객잔.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무엇보다 10월8일 밤10시부터 9일 새벽5시까지 열린 취생몽사는 밤이 지지 않는 자리였다. 실내와 야외 두 곳에서 같은 상영작을 동시에 틀었다. 술 마시며 영화를 볼 관객은 야외에서, 조용히 감상할 관객은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다가 추우면 실내로, 술이 당기면 야외로 자유롭게 오갔다. 정미 프로그래머는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관객 대부분 행사가 끝나는 새벽5시까지 자리를 지켰다”며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열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전했다.

재도약을 향한 커뮤니티 BIFF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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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생몽사에 참석한 관객들이 밤새 영화를 보고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블록)이 다른 관객(블록), 영화인(블록), 영화제(블록)와 상호 존중과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연결돼(체인)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BIFF는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블록체인과 맞닿아있다. 블록체인 개념을 영화제 운영에 장착함으로써 영화제는 영화제 자신과 상영작을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알리고, 관객과 창작자가 1년 내내 소통하면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영화제의 이런 시도는 지난 9년 동안 정치적, 경제적 외압에서 한번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구조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커뮤니티 BIFF라 할만하다. 이제 영화제는 재도약을 하기 위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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