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영화의 성이 열린다

2007-10-09

과연 ‘루마니아 뉴웨이브’는 수많은 장벽을 헤치고 새로운 물결이 될 수 있을까.

루마니아. 우리가 이 미지의 국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두명의 악마, 흡혈귀 드라큘라와 독재자 차우셰스쿠다. 하지만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새로운 영화들을 탐색하는 영화광들이라면 루마니아를 ‘새로운 영화의 신천지’로 부르는 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지난 몇년간 세계영화제를 휩쓸어 온 루마니아 영화들은 ‘이란과 한국 이후’ 새로운 영화들을 찾아 헤메고 있는 서구 비평가와 관객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왔다. ‘루마니아 뉴웨이브’라 일컬어지는 루마니아 영화의 새로운 붐을 이끄는 것은 30대의 젊은 감독들로,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의 크리스티 푸이우, <부쿠레슈티의 동쪽>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요절한 천재 크리스티안 네메스쿠, 그리고 올해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방문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크리스티안 문주, 이들은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선두에 서 있는 혈기넘치는 이름들이다.

크리스티안 문주 등 30대의 젊은 감독들이 주축

루마니아 뉴웨이브 감독들의 특징은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극도의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와, 이를 사회풍자적인 드라마와 절묘하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문주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와 크리스티 푸이유의 영화에서 이러한 특징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루마니아 영화들을 모조리 하나의 스타일적인 특성 아래 묶어버리는 것은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남은 자는 침묵한다>의 나에 카란필과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크리스티안 네메스쿠 감독의 스타일은 문주나 푸이유의 다큐멘터리적인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나에 카란필은 루마니아 감독들의 스타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루마니아 영화의 다양함을 제거해버릴 위험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젊은 감독들은 서구 영화제를 타겟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이처럼 미니멀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만을 다투어 만든다면 영화제용 작품만 만들다 다양함을 상실한 이란과도 비슷한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

루마니아 뉴웨이브가 처한 또다른 장벽은 루마니아 정부다. 자국영화의 배급과 투자를 관리하는 정부기관 CNC(National Centre for Cinematography)는 뉴웨이브 감독들의 성공에 별로 관심을 기울리지 않는 눈치다. 그들은 심지어 뉴웨이브의 첨병중 한명인 크리스티 푸이유의 차기작을 예산지원작 선발에서 매몰차게 탈락시켰다. 이것은 루마니아의 문화정책이 아직까지도 낡은 사회주의적 문화권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나에 카란필은 CNC가 지난 몇년간 “지원작 선정에 관련된 수많은 부패로 얼룩져있다”고 말한다. 다만 낡은 정책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루마니아의 영화관련법이 바뀌면서 TV나 광고회사가 CNC를 거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영화에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은 젊은 감독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부산을 찾은 문주는 “하루아침에 모든 상황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국제적 관심과 정부의 정책 변화 속에서 변화 주도

오히려 문주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극장의 부족’이다. 루마니아는 2천만명의 인구가 살아가는 거대한 국가지만 극장은 단 서른다섯개 뿐이다. 나에 카란필에 따르면 수도인 부카레스트에도 멀티플렉스는 단 3군데 밖에 없다. 이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수많은 극장들이 빙고 게임장이나 디스코 하우스로 바뀌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극장들도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문주는 극장이 부족한 자국에서의 배급난을 돌파하기 위해 거대한 캐러밴에 영사시설을 싣고 다니면서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전국 순회상영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가 나서서 단 하나의 극장이라도 더 지어줬으면 좋겠다”.

나에 카란필 감독은 “루마니아 영화는 농담거리였다”고 회상한다. “만약 10년 전에 루마니아 영화를 보러간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당신 얼굴 앞에서 대놓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루마니아의 젊은 감독들은 (마치 5~6여년전의 한국 감독들처럼) 국제적인 환대와 자국 관객들의 관심, 정책의 변화라는 세가지 열매를 동시에 얻어가고 있다. 루마니아 관객들이 좀 더 모던한 영화를 받아들일 문화적 소화력을 갖추는 동시에 각각의 감독들이 계속해서 주목할만한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루마니아는 드라큘라와 차우셰스쿠의 이름을 마침내 벗어던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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