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여운을 끌어내는 미니멀리즘

2008-10-08

올해 부산엔 카세 료의 영화가 4편이다. 이누도 잇신이 고양이를 데리고 찍은 <구구는 고양이다>와 국내에선 초난강으로 더 유명한 스맙의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가 함께 출연한 이츠이 카츠히토 감독의 <산의 사랑하는 당신>,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와 하시구치 료스케가 7년만에 만든 <나를 둘러싼 것>까지. 하지만 그는 이 네 편의 영화에서 모두 숨어있다. 주연보단 조연이고, 가끔은 단역처럼 얼굴만 잠깐 내민다. 쿠사나기 츠요시와의 공동 주연처럼 보이는 영화 <산의 사랑하는 당신에게>에서도 그는 쿠사나기에게 클라이막스를 양보했다. 맹인 마사지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서 절규하는 건 쿠사나기다. 심지어 카세 료는 주연일 때도 어딘가 모르게 자신을 숨기려 한다. 수오 마사유키의 2007년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카세는 속으로 몇번을 삭인 뒤 억울함을 토한다. 그는 메소드 연기의 폭발 대신 빈 공간의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리지만 진한 여운을 끌어낸다. 어떤 캐릭터를 입어도 항상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은 카세 료만이 가진 미니멀리즘이다.

카세 료는 구마키리 카즈요시 감독의 <안테나>를 찍으며 배우로서 주목받았다. 가정의 아픈 상처를 풀지 못한 채 자학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는 정말 뼈밖에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실패가 만든 굴 속에 하염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카세 료는 한눈에 멋진 오다기리 조나 이세야 유스케보다 평범하다. 하지만 결코 초라하진 않다. 고독을 적당한 냉소나 나르시즘으로 체화한 화려함이 그에겐 없다. 대신 그는 정직하게 빈 공간을 응시할 줄 안다. <안테나>에서 카세는 그냥 아파 보였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그는 정말 당혹스러워 보였다. 오다기리와 이세야, 아사노 타다노부와 기무라 타쿠야가 실패를 고독하게 읊조린다면 카세는 그냥 받아들인다. <스카이 크롤러>에서 스크린을 타고 시종일관 흘러 나오는 그의 저음,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에서 퉁퉁 부운 눈으로 법정을 응시하던 침묵은 결코 스타일리쉬하지 않지만 오히려 멋스럽다. 그리고 조금은 엉뚱해도 <안경>의 메르시 체조나 <나이스의 숲>의 바보같은 디제잉. 굵은 톤의 목소리를 반쯤 튕기며 내는 그의 또 다른 소리는 허공에 퍼져나오는 삑사리난 전통 관악기의 음 같다.

고급 공무원인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카세 료는 아사노 다다노부의 심부름꾼으로 연예계에 들어왔다. 이시이 소고 감독의 2000년 영화 <고조영혼 전기>로 스크린 데뷔해 <69 식스티나인> <큐티허니> <박치기> 등에 출연하며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왔고 2004년부터는 매해 7~8편이 넘는 영화에 크레딧을 올려왔다. 국내에선 <허니와 클로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 소개된 영화가 많지 않지만 그는 지난 3~4년간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중 하나다. <하나>에서 함께 작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공식 석상에서 몇 차례 카세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바 있으며, 이세야 유스케와 아사노 타다노부도 자신이 직접 연출한 영화 <가쿠토>와 <로드 246 스토리>에 각각 카세 료를 캐스팅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표했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연출작 <어웨이 위드 워즈>에선 현장 스탭으로, 2007년과 2008년엔 각각 연극 <슬픈 예감>과 스맙의 뮤직비디오 <그대로>에 출연하며 활동 반경도 넓혀가고 있는 카세 료. 그는 오다기리 조의 고독과 츠마부키 사토시의 상큼함만이 일본 남자 배우의 전부라 생각했던 우리에게 찾아온 반가운 신보다. 10월23일엔 그의 또 한 편의 출연작 <도쿄!>가 국내에서 개봉 예정. 신작도 좋지만 그의 매력이 듬뿍 담긴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를 어서 하루 빨리 국내에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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