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다

2008-10-09

두기봉만큼 국내 영화 팬들을 애타게 하는 사람도 없다. 그만큼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이 많은 사람도 없다. ‘조니 토’란 영어 이름으로(홈페이지에서 그의 작품을 검색하려면 ‘조니 토’라 입력해야 한다) 4회 <재견아랑>(1999)을 시작으로 <대사건>(2004), <흑사회2>(2006) 등을 거쳐 공동 연출작 <트라이앵글>(2007)과 올해 출품작 <참새>에 이르기까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려 8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올해는 꼭 방문하겠다던 그였지만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인 <암흑가의 세 사람> 리메이크 작업으로 인해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두기봉은 당당히 세계영화사의 새로운 거장 목록에 추가해야 할 이름이다. 그는 오우삼과 서극도 오르지 못한 자리를 넘보고 있는 사람이면서, 현재 왕가위와 더불어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부름을 받는 유일한 홍콩 감독이다. 2005년 <흑사회>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2006년 <익사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홍콩영화계로 한정하자면 너무나 많은 상을 수상했기에 간단히 요약하자면, 2004년부터(2005년을 제외하고) 홍콩비평가협회 최고감독상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상한 사람이다.

일찌감치 두기봉을 발견한 것은 프랑스 영화지 <포지티프>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두기봉의 새로운 출발, 혹은 신 홍콩 누아르의 출발점이라 할 만한 <미션>(1999)을 2001년 9월호 표지로 올려놓으며 지아 장커의 <플랫폼>보다 앞에 배치해 그를 인터뷰와 함께 소개했다. “오우삼 이후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되던 홍콩 누아르 장르에 전혀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격찬이었다. <포지티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같은 프랑스 영화지 <까이에 뒤 시네마>는 상대적으로 당시 서극의 <순류역류>(2000)를 미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6년 뒤 <까이에 뒤 시네마> 역시 2007년 1월호 표지를 두기봉의 <흑사회 2>(2006)로 장식하며 8페이지를 할애했다. 바야흐로 그가 성룡과 주성치, 왕가위와 더불어 홍콩영화의 서로 다른 네 국면을 대표하는 자리로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두기봉에 관한 저서 <Director in Action>을 쓴 홍콩 영화학자 스티븐 테오는 <미션>에 대해 ‘추상화된 액션의 극점’이라 말하며 “현재까지 두기봉의 액션영화들 중 가장 고전적인 양식미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션>에는 오우삼의 영화들처럼 슬로모션도 없고 몸을 날려 총을 쏴대는 율동도 없다. 마치 일본 연극 ‘노’를 보는 것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때로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상황에 무감한 듯한 인물들의 움직임은 위험천만한 위기 속에서도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션>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액션’이라는 말보다 ‘제스처’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아마도 <미션>으로 촉발된 두기봉 세계의 집대성이라 할만한 작품은 <흑사회> 연작일 것이다.

두기봉의 영화에는 언제나 타란티노나 마이클 만이 질투를 느낄 만큼의 명장면들이 속출한다. 스티븐 테오는 “두기봉은 지난 7년 동안 <진심영웅> <미션> <대사건> 등 폭력과 액션의 미학적 표현에 있어 늘 새롭고 스타일리시한 영역을 개척해왔다”며 “<흑사회>에서 두기봉은 드라마가 액션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질 정도로 촘촘히 짜인 내러티브를 선보이지만, 폭력을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고안해내 그만의 액션 누아르영화를 한 번 더 날카로운 경계로 밀어 붙인다”고 덧붙인다. <익사일>을 거쳐 <매드 디텍티브> <참새>에 이르기까지 그는 액션의 연쇄 속에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다. 감정은 극도로 고조시키면서도 카메라 워크와 음악은 최대한 절제하고, 종종 발작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철저히 계산된 액션 신들과 공존하는 것은 전에 없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그러한 과잉과 절제가 눈부시게 결합한 그의 액션신들은 놀라운 쾌감을 선사한다. 결코 타오르지 않는 절제된 감정, 애매모호한 시선만을 교환하는 인물들, 결국 모든 것이 예정돼 있음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하는 숙명의 고리 등 현재 오우삼이 떠난 홍콩영화계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적자를 찾으라면 오직 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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