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G 3

2011-10-13

<카이에 뒤 시네마>가 지지하는 ‘아시아 Big 3’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 처음 출범한 부산영화포럼에 대담자로 참여한 홍상수, 봉준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그들이다. 10일 오후 5시30분 그랜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1세기 아시아영화의 길을 묻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포럼에서 세 명의 감독은 <카이에 뒤 시네마> 필진들과 함께 아시아영화의 현재와 각자의 영화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흥미로운 대화를 전한다.

* 홍상수가 아피찻퐁에게

아피찻퐁 감독의 <엉클 분미>를 봤는데 굉장히 좋았다. 자신의 템포를 관객에게 강요하며 영화를 이끌어나가는데, 그 템포가 후반부에 힘을 발휘하더라. 또 템포와 매치되어 흘러가는 감독님의 선택들이 인상적이었다. 미술, 세트, 조명, 캐스팅, 사운드가 템포에 맞물려 함께 태어난 것들같이 느껴졌다고 할까. 이 감독은 정말로 자기 것을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귀신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장면은 단순하면서도 귀여웠다. 귀신과 호랑이, 이처럼 비주얼한 힘이 굉장히 좋은 이미지들이 한데 섞여 한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 봉준호가 아피찻퐁에게

그의 영화 <징후와 세기> <열대병>을 봤다. 내가 생태적으로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낯설고 기이한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설명하기 힘든 마술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에겐 어떤 범주나 족보에도 넣을 수 없는 영화가 강렬하게 느껴지는데, 정확히 그 살아있는 예가 아피찻퐁 감독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엉클 분미>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아내와 아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왔다. 중학생 아들이 굉장히 흥분해서 눈에서 붉은 빛이 나오는 괴물에 대해 말하는 걸 보고,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가 중학생도 압도하는구나 생각했다(웃음).

* 홍상수가 봉준호에게

사람이 되게 두툼하다(웃음). 어떻게 보면 예민한 사람 같고 어떻게 보면 수줍음도 있는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신경체계가 두툼하고 듬직한 사람 같다. 그리고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사람이다. 작가로서의 행로에 대한 결정들이 굉장히 과감하다. 그건 자기 자신이 어떤지 잘 알고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과감함이다. 영화로 보면 유머감각이 있어 재미있는 대사를 잘 쓰는 것 같고, 드라마를 몰고 가는 힘도 잘 연출해내는 것 같다.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이다.

* 아피찻퐁이 봉준호에게

<괴물>을 극장에서 봤다. 처음엔 다소 당혹스러웠다. 어떤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을 수가 없는 작품이더라. 장르물이긴 한데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기법이나 스타일에 있어서, 만드는 사람이 정말로 즐기며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브리드영화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괴물>이 아주 특별한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 당시 연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괴물>을 본 뒤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영화가 너무 강렬해 사랑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게 봉준호 감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해줘 감사하다(웃음).

* 아피찻퐁이 홍상수에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해변의 여인>이다. 그 작품을 보면서 영화가 아니라 무언가를 목격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영화감독의 인생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말이다. 특히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쪽지에다 도형을 그리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장면을 만들어냈을까, 이건 분명 실제 경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뒤에도 여운이 강렬하게 남아있어 나에게 <해변의 여인>은 아주 중요한 영화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하고 다녔다. 내가 신작을 기다리는 감독은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와 홍상수 정도다. 그렇게 사랑하는 감독의 작품을 볼 때마다 영화 작업에 큰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된다.

* 봉준호가 홍상수에게

나는 <밤과 낮>을 제외한 홍상수 감독의 모든 DVD를 가지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감독님의 영화를 다시 꺼내보는데, 볼 때마다 예전에 봤던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진열장에 DVD를 놓아둔 사이 누가 그 영화를 가져가 다시 작업하고 꽂아놓은 것처럼, 새롭고 이상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최근에는 <북촌방향>을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께 주책없게 긴 문자를 보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능력 밖에 있는 걸 시도하느라 항상 힘들고 쩔쩔매는데, 홍 감독님은 영화를 한쪽 주머니 안에 넣고 한 손으로 사랑스럽게 주무르는 느낌이 든다. 나는 감독님의 창작 과정과 현장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그저 관객으로서 그 결과물을 보고 오랫동안 그 신비로움을 체험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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