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나의 영화] 식후 담배의 맛

2013-10-11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데일리 마감을 하는 기자가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편집장의 직위쯤은 되어야 허용되는 무한 권한이다. 나머지 기자들은? 영화도, 사람도, 파티도 구경 못하고 데일리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죽어라 마감만 하는 수밖에.

몇 년간의 이런 쳇바퀴 같은 일정으로 터득한 바에 의하면, 깔끔하게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한 편으로, 영화제 마감이 모두 끝난 성스러운 그날에만 보는 걸로 정했다. 팡호청 감독의 <담배 연기 속에 피는 사랑>을 본 것도 2010년 데일리 마감이 모두 끝나고 데일리 사무실의 짐까지 완벽히 정리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모처럼 늘어지게 자고 팅팅 부은 얼굴로 데일리팀이 모두 모여, 부산의 맛집을 섭렵한 후, 맘껏 허락된 영화를 봤다. 어라! 그런데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금연법 시행으로 공공장소의 담배가 허락되지 않는 홍콩, 이웃 남녀가 담배를 매개로 커플이 되어 겪는 색다른 멜로영화. 팡호청 감독의 재기로 가득 찬 <담배 연기 속에 피는 사랑>은 한국 멜로영화의 뻔 한 도식이 아닌 생활형 멜로의 모범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상영이 끝난 후 GV를 하러 들어오는 팡호청 감독을 붙잡고, 굳이 내 소개와 감상을 전하며 조만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해의 데일리 지면은 이미 마감됐으니, 팡호청 감독의 말을 실을 지면도 없다는 게, 아쉽지만 핵심이었다. 바야흐로 열흘간의 피 말리는 데일리 마감은 끝났고, 자고로 영화는 이럴 때 보는 게 (비흡연가로 담배 맛도 모르지만) 식후 담배 같은 진정한 맛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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