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극장에서 개봉하는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다

2013-10-12

서울 명동에 가면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인간 광고판’들이 있다. 이런저런 광고 문구가 새겨진 널따란 널빤지를 든 채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냥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끔찍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 오랜만에 돌아온 차이밍량은 <떠돌이 개>에서 그 인간 광고판을, 그의 아이들을,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세 여인(이지만 하나의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는 모호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이야기는 거의 없고 움직임과 속도와 시간만이 새겨지는 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안녕, 용문객잔> 이후 비로소 출현한 차이밍량의 또 다른 걸작인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은 차이밍량 영화의 영원한 얼굴 리캉생이다.

-<떠돌이 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차이밍량_10여 년 전 대만에서 본 광경 때문이다. 신호등에 한 남자가 광고판을 들고 서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아파트 광고로 표현했지만 내가 본 건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파는 것이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떻게 사람이 광고판으로 설 수 있단 말인가. 호기심이 생기는 한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캉생에게 이 영화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일들은 분명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광고판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이 있다. 보는 사람이 힘들 정도인데, 당시에 연기하기에는 어떠했나.
=리캉생_사실 그 길에는 사람도 많았고 차도 많았다. 차에 받히지 않도록, 바람에 광고판이 쓰러지지 않도록, 양쪽 다 조심해야만 했다.
=차이밍량_리캉생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는 정말 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리캉생에게 정말 위험한 일을 시킨 거였다.

-영화 속에 나오는 어린 남매는 당신의 조카라고 들었다.
=차이밍량_형의 아이들이다. 함께 살고 있어서 친한 사이다. 그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여동생은 아주 어리다보니, 장면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왜 그래야 하냐고 자꾸 물어서 애를 먹었다.(웃음)

-당신은 어떤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가.
=리캉생_마지막 장면이다. 내가 천샹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장면. 감독이 벽화를 보고 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도대체 몇 분이 지나도 컷을 안 하는 거다. 그때 우리가 있던 건물 옆으로 지상철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에는 지난 나의 연기생활이 지나갔다. 어떻게 해서 나는 여기 서 있게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천샹치를 뒤에서 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 장면의 연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정말 큰 교감이 생겼다. 그녀에게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갔다는 신기한 느낌이 들더라.

-그렇게 오래 바라보게 할 때 감독이 원한 건 무엇이었나.
=차이밍량_우리 생활 속에는 그와 같은 무의미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냥 서 있고 그냥 앉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미가 배제된 시간을 길게 넣고 싶었다. 많은 관객이 그 시간 동안 다양한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어떤 걸 느끼게 하는 것 아니겠나. 여기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있다, 둘은 포옹을 하고 있다, 둘은 친밀하다 정도로만 설명하고 싶었다. 어떤 관계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말이 없고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고 혹은 절망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 우리들 삶의 보편성 중 하나다. 불확정에서 오는 어떤 황망한 느낌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 나의 영화들은 이야기가 적었지만, 이번 영화는 이야기라고 할 게 아예 없다.

-그렇다. 대신에 사람, 공간, 속도가 <떠돌이 개>에서는 중요한 것 같다.
=차이밍량_내가 계속 주시하고 신경 썼던 부분이다. 영화의 길이 안에는 속도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이번 영화를 만들며 프로듀서와도 바로 그 길이와 속도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한편으로는 내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작품이라니 무슨 뜻인가.
=차이밍량_앞으로는 지금과 같이 영화를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자세히 말하기 어렵지만 몸도 많이 안 좋다. 사람들이 왜 영화를 자주 만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이제는 보통 극장에서 개봉하는 방식의 영화를 하고 싶지 않다. 흥미가 떨어졌다. 내 작품의 창조성, 예술성이 상업과 충돌하는 것에 피로함을 느낀다. 새로운 통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정도의 영화를 생각한다. 지금은 꼭 신발을 신기 위해 내 발을 깎은 느낌이다. 계속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그 신발은 내게 맞지 않으니 다른 신발을 발명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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