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적대를 넘어선 포용의 시도

2013-10-12

아모스 기타이의 신작 <아나 아라비아>는 온전한 의미에서 ‘이야기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혹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듣게 된다. 우리는 전적으로 청자의 위치에 있다. 말하자면 시각성은 제한되어 있다. 사건이라 불릴 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 단지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사연들을 들어야만 한다.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중심에 놓여 있는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나 아라비아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아모스 기타이는 이 이야기를 뉴스에서 얻었다고 한다. 사연은 이렇다. 이스라엘 북쪽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건강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그녀가 아이 때부터 영양실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회교도 여인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관객은 듣는 사람
<아나 아라비아>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시암 하산이라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는 실제로는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한나 칼라보노프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나중에 이스라엘로 건너와 팔레스타인인 유세프와 결혼해 시암 하산이 되었다. 사람들을 그녀를 아나 아라비아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 말은 ‘나, 아랍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관객이 청자의 위치에 있는 영화라고 말했던 본 뜻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영화의 처음에서 야엘이라 불리는 한 이스라엘 저널리스트가 텔아비브 근처의 팔레스타인인 커뮤니티 자파를 방문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이 커뮤니티의 거주자들에게서 기사가 될 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는데, 그녀를 환대한 이는 아나 아라비아의 남편 유세프이다. 그는 자신의 딸과 아들을 야엘에게 소개하고, 이웃주민들에게 야엘을 안내한다. 야엘이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유대인 여성이 팔레스타인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 결혼 때문에 고초를 겪었는가이다.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사랑과 가족의 일에 대해 듣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뼈있는 질문 중의 하나는 아마도 러시아 혹은 팔레스타인 이민자들 중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누구를 더 잘 대우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아나 아라비아의 결혼만큼이나 이스라엘의 다문화정책과 관련한 비평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의 형식으로 담아낸 삶의 순간들
프랑스의 평론가 장 미셀 프루동의 표현을 빌자면 아모스 기타이는 그동안 우리와 모든 세계와의 관계를 질문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여기에는 민족, 국가, 계급, 성차별 등의 다양한 집단의 일원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오가는 그의 영화는 다양한 모순을 내포한 이스라엘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해 한때 고국을 떠나 작업을 해야만 했는데, 이제 그의 작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만이 아닌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불안한 현실을 되짚어 보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했다. 특히 그의 영화는 치밀하고 건축적으로 구축된 형식으로 삶의 순간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령 가령 전편이 40개의 컷으로 구성된 <에이릴라>(2003)의 초반 7분여에 이르는 자동차 내부에서 촬영된 긴 롱테이크나 한 여인의 눈물에서 시작해 검문소를 통과해 길게 진행하는 <프리 존>(2005)의 첫 시작부가 그러하다. <아나 아라비아>에서는 이러한 원 컷의 스타일이 더욱 확장되어 영화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컷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엘이 마을을 방문한 이래로 모든 장면은 그녀가 움직여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야엘이 이 마을의 작은 골목을 돌아다니는 걸음의 호흡을 시간의 연속성에서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호흡은 하나의 파노라믹한 순간처럼 관객들을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참여자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테크닉은 움직임의 아주 느린 호흡을 반영하며 영화가 표현하는 주된 대상, 즉 유대인과 아랍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적대성, 분할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아모스 기타이가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카메라의 연속성으로 이들 적대적인 분할의 공존의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통합을 시도하는 카메라의 흐름
아모스 기타이는 이미 <프리 존>이나 <케드마>(2002)와 같은 작품에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을 둘러싼 복잡한 적대성의 문제를 다뤘었다. <프리 존>에서의 미국인, 유대인, 팔레스타인의 국적의 여자 3명의 여행은 중동의 정치문제의 복잡성을,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영화인 <케드마>에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의 도착을 둘러싼 참혹한 비극은 고다르가 역사의 스테레오라 부른 비극의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아나 아라비아>에서 아모스 기타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적 적대성을 두 다리로 걸어가게 한다. 그것은 적대적인 분할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증언과 이야기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근접한 영화라 할 만 한데, 그도 그럴 것이 저널리스트를 통해 사람들의 증언을 담아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원 컷 스타일은 기록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포용의 형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종적, 문화적 복잡성의 공존을 이뤄내는 카메라의 일관된 흐름은 아랍과 유대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여하한 분할 없는 통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착상은 팔레스타인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하나의 리듬 안에서 집결시키는 것이다.

마을의 작은 공동체는 치밀하고 건축적으로 구축된 구도와 리듬으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는 이 작은 세계의 보이지 않는 상징과도 같이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천천히 카메라는 이 나무를 따라 올라가 마을의 전경이 우리의 눈에 들어올 때까지 움직인다. 이제 막 우리는 작은 마을의 영혼의 세계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 연속적 움직임에는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 작은 마을의 이야기가 일견 희망 없어 보이는 더 넒은 세계를 확장되어 가도록 하는 것. 그런 식으로 아모스 기타이는 적대적 세계의 분할을 넘어서 잃어버린 통합의 희망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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