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고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2014-10-10

진행 김성욱 영화평론가·정리 장영엽·통역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사진 손홍주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영화와 관련해 자신을 철학자라기보다는 시네필 혹은 아마추어라 부르길 원하는 자크 랑시에르와 만났다. 영화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위치에서 영화를 논했던 그가 영화제의 심사를 하는 일은 꽤 예외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가 전문가들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속해 있고, 아마추어리즘이 단지 영화를 쾌락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의 교차로서 영화의 이론을 구성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긴다. 영화를 관객의 편에서 전유하고 취향과 비평의 규범을 변경하는 시네필리아 혹은 아마추어의 정치학을 말하는 랑시에르와의 긴 대화 중 일부를 소개한다.

2 (11)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철학자인 당신이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건 굉장히 예외적인 일이다. 어떤 영화에 대해 판단하고 선별하며 지지하는 것은 대개 영화비평가들의 영역이다. 영화를 심사하는 것은 당신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나, 혹은 곤혹스러운 경험이었나. 영화를 선별하는 건 영화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나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매체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면모도 있지만 동시에 아마추어리즘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이란 여행과 비슷하다. 여행을 떠나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듯, 철학 역시 특정 분야에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산영화제가 나를 심사위원으로 선택한 건, 내가 영화에 대한 저서를 쓴 이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길 원해서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심사위원직을 수락했다.
영화를 심사하게 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심사위원들과도 객관적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을 텐데, 이번 영화제의 심사 기준은 무엇이었나.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뉴 커런츠 부문 12편의 영화를 심사했는데, 영화를 판단하는 특정 기준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 이후를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영화인지를 본다. 그런 작품들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이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허용하는 작품들을 선호했다면, 어떤 심사위원들은 야심만만하고 액션이 가미된 작품을 선호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우리는 논의 끝에 결국 합의에 도달했다.
당신은 여전히 영화가 ‘놀라움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요즘 비평가들을 보면 최근에 제작되는 영화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놀라움(surprise)과 충격(shock)은 다르다. 이것은 속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충격’이 굉장히 스피드하게 나타나는 어떤 것이라면, ‘놀라움’은 무언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느린 페이스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도대체 영화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걸 나는 ‘놀라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의 영화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전개가 매우 느린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영화는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러한 작품들이 기존 극영화의 경계를 허물거나 침범하고 있다. 나는 이런 작품들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당신의 저서를 보면 유러피안시네마, 아메리칸시네마에 대한 글은 꽤 있으나 아시아영화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올해의 부산에서는 주로 아시아영화를 많이 보았을 텐데, 아시아영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아시아영화는 그들만의 특별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아시아영화만의 독특한 사례는 아니다. 1950년대 미국영화 역시 당대 유럽의 모더니즘에 영향 받은 감독들이 유럽적인 요소들을 미국의 영화 산업에 녹여 넣어 또 다른 조합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최근 10년간의 사례로 미루어보았을 때, 아시아영화에서도 이처럼 새로운 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시아영화는 미국이나 프랑스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런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사회의 모순에 대해 굉장히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건 아시아영화의 특징이다. 예술적인 코드와 사회성의 결합, 그게 아시아영화의 특징이 아닐까.

Tags: , , ,


About the Author



Back to Top ↑